진료 사례 소개
30대 여성 환자분께서 2-3달 전부터 반복되는 어지럼과 두통으로 내원하셨습니다. 사실 환자분의 증상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을 못 자면 어지럼과 두통이 동반되고 가끔 조퇴하거나 결석을 할 정도로 심해서 대학병원 진료와 MRI 검사까지 받았으나, “이상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단순히 스트레스성이라 생각하며 진통제(타이레놀, 탁센 등)를 복용하며 견뎌오셨습니다. 다행히 대학 진학 후에는 증상이 줄어들어 한동안 큰 불편함 없이 지내셨죠. 그런데 약 1년 전에 회사 부서가 바뀐 뒤로 업무량이 급증하고 직장 내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고, 2~3달 전부터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 어지럼과 속 울렁거림, 구역감
- 밝은 모니터 빛이나 주변 소음에 예민해짐
- 움직이면 골이 흔들리는 듯 함
- 관자놀이, 후두부, 앞이마가 욱신거림
이런 일이 일주일에 많으면 거의 매일, 적어도 2-3일에 한번씩 발생해서 업무에 지장을 받고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멀미약과 진통제로 버텨보려 했고, 내과 처방약도 복용해 보았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었습니다. 어지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서 ‘이석증 검사’를 받았는데 ‘이석증은 아니다’는 얘기를 들으셨습니다. 이후 고민 끝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저희 신경과를 찾게 되셨습니다.
검사 결과 및 최종 진단
대화를 나누면서 경과와 증상을 자세히 정리하면서 생각해 보니 ‘전정 편두통’ 의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전정신경계(균형을 유지하는 신경계)와 자율신경계의 기능을 확인하는 정밀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1. 비디오 안진 검사
전정신경계는 ‘비디오 안진 검사’라는 방법으로 확인합니다. 이 검사 중에는 특수 고글을 착용한 상태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홍채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안진’ 이라는 이상 눈 움직임이 있는지 분석합니다.

그림 1. 검사 중 특정 자세에서 미세한 안진이 관찰되었으나 전정신경계 질환 (이석증, 전정신경염 등) 으로 진단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2. 자율신경계 검사
자율신경계는 기립경사 테이블, 심호흡 심박동 검사, 심박 변이도 검사를 통해서 호흡과 맥박이 신체에 필요한 만큼 적절히 조절되는지를 확인합니다.


최근의 스트레스를 반영하듯 교감신경이 항진, 부교감 신경이 저하되어 있었는데, 생활습관 관리, 이완, 휴식 등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몇 달 씩 지속되는 어지럼과 두통의 주요 원인으로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증상, 병력, 검사 결과를 종합했을 때, 최종적으로 ‘전정 편두통’으로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분께서는 혹시 뇌 질환은 아닐지 걱정을 하셨지만, 학생 때 겪었던 것과 증상이 비슷하고, 당시에 이미 MRI 검사를 하신 적도 있으며 증상 양상도 전정 편두통에 잘 맞으니 우선 약물 치료와 스트레스 관리를 하면서 효과를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전정 편두통의 정의와 발생 원인
국내 연구에 따르면 어지럼증의 유병률은 17~39%로 굉장히 흔한 증상입니다. 그런데 흔한 증상인데도 왜 생긴건지 원인을 파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편두통 역시 유병률이 15% 정도나 됩니다. 6-7명 중에 한 명은 편두통이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한 쪽 머리가 아프다’ 라는 것 만으로는 편두통이라고 진단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편두통으로 진단할 수 있을까요? 편두통을 진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마치 심리테스트나 MBTI 검사를 하듯이 내가 느끼는 ‘증상’이 어떤지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진단 기준 전문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증상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두통이 오래가고 (4시간~3일까지)
- 많이 아프다 (업무나 생활에 지장)
- 한쪽이 욱신욱신
- 움직이면 더 아파서 꼼짝 못한다
- 구역, 구토
- 시끄럽고 밝으면 예민해진다
이 중에서 3가지 이상이 해당된다면 편두통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서 어지러움이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생긴다면 ‘전정 편두통’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어지러울 때 편두통 양상의 두통이 동반됨
- 어지러울 때 빛이나 소리에 예민해짐
이 때, 어지럼과 두통은 같이 생길 수도 있고, 따로따로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지러울 때마다 두통이 동반된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 반면, 몇 년 전에는 두통만 심하다가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두통은 없이 어지럼만 심해서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어지러움과 두통을 일으키는 질환이 꼭 전정 편두통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정 편두통’ 이나 ‘편두통’ 자체를 검사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정 편두통의 진단은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렵습니다. 어지러움과 두통이 편두통으로 인해 발생한 게 정말 맞는지를 확인하려면 신경과 전문의의 체계화된 문진이 필수적이고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다른 질환을 검사를 통해 배제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환들이 있을 수 있는데요,
- 자율신경계 질환: 기립성 빈맥 증후군
- 전정신경계 질환: 전정 신경염, 메니에르병 등
- 전신 컨디션 관련: 빈혈, 간/신장애, 저혈당/고혈당, 갑상선 기능 변화 등
- 중추신경계 질환: 뇌혈관질환, 뇌종양 등
그 외에도, 약물 부작용이나 수면장애, 최근의 심한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얼마나 의심하고 얼마나 열심히 확인하는지가 전정 편두통 진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맞춤형 치료 및 관리 계획
안타깝게도, 현 시점에서 전정 편두통은 약으로 ‘완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 신경계가 여러 가지 외부, 내부 요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활습관 관리, 약물 치료를 통해서 나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1. 생활 습관 교정 (편두통 유발 요인 관리)
편두통성 뇌는 ‘변화’를 싫어합니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 수면 위생: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수면 부족은 물론, 과도한 늦잠, 낮잠도 독이 됩니다).
- 식이 관리: 카페인(커피, 에너지 드링크), 치즈, 초콜릿, 가공육 등 뇌를 자극하는 음식 줄이기.
- 유산소 운동: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뇌가 어지럼, 편두통을 잘 견딜 수 있게 도와줍니다.
2. 맞춤형 약물 치료
약물 치료는 크게 아래와 같이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눕니다.
1> 급성기 치료: 어지럼이나 두통이 시작될 때 복용하여 증상을 차단하는 목적입니다. 가벼운 경우에는 타이레놀이나 진통소염제로 조절되기도 하지만, 일반 진통제가 듣지 않는 경우, 편두통 전용 약물(트립탄 계열 등)을 처방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지럼이나 두통이 생기기 직전 또는 증상 초기에 바로 복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진통제를 참다가 나중에 복용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2> 예방적 치료: 증상이 너무 자주(주 2~3회) 나타나 일상이 무너진 경우, 뇌의 민감도를 낮춰주는 약을 일정 기간 꾸준히 복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통증을 참는 게 아니라 병의 뿌리를 관리하는 과정입니다. 크게 5가지 종류가 1차 약물로 사용되는데요, 각각 아미트립틸린 (Amitriptyline), 플루나리진 (Flunarizine), 베타 차단제 (Beta-blocker, 예: 프로프라놀롤), 토피라메이트 (Topiramate), 발프로산 (Valproic acid)이 되겠습니다. 그 외에도 CGRP라는 원인 물질을 선택적으로 막아 어지럼과 편두통을 조절하는 주사제도 있습니다.
-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면? → 아미트립틸린
- 두통보다 어지럼이 주 증상이라면? → 플루나리진
- 체중 증가가 절대 싫다면? → 토피라메이트
- 두근거리고 긴장도가 높다면? → 프로프라놀롤
- 다른 편두통 예방약물에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 발프로산
- 기존 약에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 CGRP 표적 주사
예방 치료의 핵심은 ‘인내심’ 입니다.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약물 1-2가지를 골라 부작용을 관찰하며 용량을 올리는데요, 약물이 제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적어도 2달은 필요하고, 이후에 증상이 잘 조절되더라도 추가적으로 1-2달 유지를 한 뒤에 천천히 줄여야 합니다.
치료 후 경과 및 예후
환자분의 경우 예방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증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지럼이 심하고, 스트레스로 수면부족까지 동반된 상태임을 고려하여 플루나리진과 아미트립틸린을 저녁 또는 자기 전에 드시도록 처방했습니다. 환자분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클 정도로 증상이 잦아 예방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수면 부족과 어지럼증을 동시에 잡기 위해 아미트립틸린과 플루나리진을 처방했고, 증상 초기 대응을 위해 트립탄 제제를 처방했습니다.
[2주 후의 변화]
초반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 약간 나른한 느낌이 있었으나 금방 적응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아졌고 어지럼, 두통도 빈도나 세기가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어지럼/두통이 시작될 때 트립탄을 즉시 복용하니 일반 진통제를 먹을 때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호전 경과이긴 하지만 아직도 주에 1~2회 정도 자주 증상이 발생하고 있어서 예방약을 1달 더 꾸준히 더 복용하기로 했고, 다음 달에 경과를 봐서 좀 더 유지할지 또는 줄일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의 조언
이렇듯 전정 편두통은 적극적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입니다. 실제 국내 연구 자료에서도 전정편두통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 중 10% 만이 ‘어지럼이 편두통 때문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진단이 된다면 치료 방법은 비교적 명쾌하게 정해져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진료를 받으신다면 생활에 지장을 거의 안 줄 정도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어지럼과 두통이 반복되는데 무슨 병인지 어딜 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시다면 신경과에 내원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 1. 이태경, and 성기범. “어지럼 환자의 진단적 접근.” J Korean Med Assoc 51.11 (2008): 960-74.
- 2. Huang, Tzu-Chou, Shuu-Jiun Wang, and Amir Kheradmand. “Vestibular migraine: an update on current understanding and future directions.” Cephalalgia 40.1 (2020): 107-121.
- 3. Smyth, D., Britton, Z., Murdin, L., Arshad, Q., & Kaski, D. (2022). Vestibular migraine treatment: a comprehensive practical review. Brain, 145(11), 3741-3754.
글쓴이 : 권하님 원장
강남스마트신경과의원 / 신경과 전문의
